창세기1장-3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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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1:26-28 --- 하나님께서 심혈을 기울이신 존재
진주호 2015-01-02 추천 0 댓글 0 조회 339

<맨 마지막에 등장하는 인간>

 

오늘은 창조의 끝 장면에서 맨 마지막에 창조를 받는 인간의 창조에 대해서 살펴보면서 그 속에서 발견할 수 있는 하나님의 의도와 계획을 생각해보도록 하겠습니다. 하나님의 창조하시는 일들 중에서 인간의 창조는 맨 마지막에 이루어졌습니다. 저는 최근까지만 해도 이 사실에 대해 생각하기를 인간의 창조가 맨 나중에 된 것은 온 우주와 만물 중에서 인간을 가장 중요한 존재로 대접해 주시기 위한 것이라고만 여겼습니다. 우리가 흔히 어떤 행사를 하거나 축제를 열면 처음에는 별로 알려지지 않은 사람들이 먼저 나와서 분위기를 띄우고 맨 마지막에 거물급들이 등장하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천지와 만물 중에서 인간을 가장 뛰어난 신분으로 창조하셨다는 것은 결코 사실 무근의 허무맹랑한 생각이 아닙니다. 성경에는 그런 생각을 뒷받침 해주는 분명한 증거가 있습니다. “여러분! 신분으로 따졌을 때 천사가 높을까요? 사람이 높을까요?” 현재 상태로의 능력이나 영광으로 따져본다면 분명히 천사가 인간들보다는 훨씬 더 뛰어나고 영화롭습니다. 하지만 신분으로만 가지고 따지자면 우리가 천사들보다도 훨씬 더 높고 존귀한 자들입니다. 왜냐하면 천사들은 하나님께서 부리는 종들로 지으셨고, 인간들은 하나님의 자녀요, 성자 하나님의 신부라는 자격으로 지으셨기 때문입니다.

 

(히브리서1:14)에 보면 "모든 천사들은 부리는 영으로서 구원 얻을 후사들을 위하여 섬기라고 보내심이 아니뇨" 하는 말씀이 나옵니다. 쉬운 번역으로는 "모든 천사들은 하나님을 섬기는 영이며, 구원 받을 사람들을 돕기 위해 보내진 자들입니다." 라는 뜻입니다. 또 다음 장으로 넘어가면 예수님께서 낮아지셔서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죽으심과 부활로 구원 사역을 이루어 주신 일을 두고 (히브리서2:16)에 "이는 실로 천사들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 아니요 오직 아브라함의 자손을 붙들어 주려 하심이라" 하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을 근거로 하여 판단해 보면 참으로 인간은 천지와 만물 중에서 '하나님' 다음 가는 서열로 존재하도록 지어진 위대하고 존귀한 신분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부여해 주고자 하신 이 명예로운 신분을 결코 값 싸게 여겨서는 안 될 일입니다.

 

여기까지가 최근까지 가지고 있던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을 준비하면서 묵상을 하는 중에 우리의 존귀한 신분 때문에 인간이 맨 나중에 등장한 것이냐 하는 부분에서는 생각을 조금 수정할 필요가 있다는 걸 느꼈습니다. 왜냐하면 인간이 만물 중에 하나님 다음 가는 존재로 지어졌다는 부분만 강조할 경우, 타락한 마음을 가진 우리는 자칫 몹시 거들먹거리면서 하나님마저도 우리를 무대 위로 화려하게 등장시켜 주기 위한 사회자인 것처럼 취급할 위험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인간 자신이 우주와 역사의 주인공이라고 착각할 위험성이 있다는 뜻입니다. 매 시대마다 '기독교'라는 이름으로, 많은 사람들이 우리가 부르는 것과 똑같이 하나님과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이라고 부르고, 성령을 강조하곤 했지만,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대접해 드리지 않고 자기의 필요에 따라 써먹을 수 있는 전능한 하인 정도로 취급하는 경우가 너무나 많았습니다. 인간의 오만한 죄의 성향 때문에 빚어지는 무례하고 통탄할 노릇이 아닐 수 없습니다.

 

모세가 시내산 위로 율법을 받으러 올라갔을 때 산 아래 남은 백성들이 아론을 협박해서 만들어낸 것이 금송아지 형상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금송아지를 가리킨 이름이 다른 신이 아니고 자기들을 애굽에서 이끌어낸 여호와라는 겁니다. 자기들 눈앞에 번쩍거리는 황금의 송아지 형상이 있고, 또 자기들의 원하는 번영과 성공을 보장하는, 자기들이 써먹을 수 있는 신으로, 여호와 하나님을 변질시키려고 했던 첫 시도였습니다. 훗날 이스라엘이 남북으로 나뉠 때 북쪽의 임금 여로보암이 했던 짓도 바로 그 일입니다. 그는 단과 벧엘에 금송아지를 만들어 세우고는 그것을 가리켜 복을 주는 여호와라고 백성들에게 가르쳤습니다. 인간의 오만함과 방자함은 진리로 다스려지지 않으면 언제나 하나님까지도 마음대로 조종해서 자기들이 원하는 대로 써먹으려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성경을 통해서 인간들의 이러한 태도가 몹시도 역겨우시다고 울분을 토하곤 하셨습니다.

 

십계명의 제2계명은 바로 그런 잘못된 태도를 경고하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네 하나님을 눈에 보이는 형상으로 만들지 말라. 조금 더 확장해서 해석하면 하나님을 네가 믿고 싶은대로 멋대로 가공해서 믿지 마라. 어떤 사람들은 아들 낳으려고 예수 믿고, 어떤 사람들은 사업이 잘 되었으면 하고 바라고, 또 다른 사람들은 병을 고치려고 믿기도 합니다. 믿음 생활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 아직 어린 믿음이라 그렇다면 얼마든지 이해해 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일평생 간직하고 살아온 믿음이라는 것이 그렇게 자기들 소원이나 성취시켜 주는 미신적인 종교 정도로 알고, 그런 우상숭배적인 마음으로 하나님을 대하는 것은 불경건함의 극치가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주인공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주인공이시며, 우리는 다만 그분의 영광을 드러내야 할 책임 있는 그분의 피조물인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런 관점에서 곰곰히 생각해 보니까 인간이 맨 나중에 지어진 것은 겸손함을 위한 장치일 수도 있겠구나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고, 그것이 성령께서 여러분에게 전하라고 주신 메세지라는 확신이 생겨 설교를 작성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천지와 만물을 창조하던 시간에 처음부터 있지 않았고 그 모든 것들이 다 만들어진 다음에 맨 나중에 초대되어진 존재들입니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해줍니다.

 

1) 첫째 우리는 맨 나중에 태어났기 때문에 뭔가를 스스로 아는 척 할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과 천사들과 세상 만물이 다 우리보다 먼저 존재해 있었고 우리는 맨 나중에 그들이 지켜보는 가운데서 눈비비고 일어난 것입니다. 이 사실은 인간이란 누군가로부터 설명을 들어야 하고 안내를 받아야만 하는 위치에 놓여 있다는 사실을 놓쳐서는 안 됩니다. 물론 우리의 신분은 하나님께서 더 없이 존귀하게 만들어 주셨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이유로 나대며 오만 방자히 행동할 수는 없다는 말씀입니다. 우리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무엇을 위해서 만들어졌는지, 온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 창조하신 하나님을 위해서는 어떤 일들을 해야만 하는지, 등등을 하나하나 설명 받고 배우고 되새김질을 해야만 되는 존재가 인간이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 가르쳐 주시는 대로만 한 걸음씩 나아갈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처음부터 인정하고 인생을 시작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제일 곤란한 사람들이 잘 배우려 하지 않는 사람들입니다. 자기들이 가진 몇 가지 안 되는 경험을 가지고 남의 말은 들으려고 하지를 않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특히 우리가 맨 나중에 지어진 존재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합니다. 차근차근 설명을 듣고 모른 건 진지하게 질문하고 그러는 것을 자존심 상해하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바로 그런 겸손한 모습을 원하셔서 우리를 맨 나중에 지으신 것입니다.

 

“5) 너는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를 의뢰하고 네 명철을 의지하지 말라 6) 너는 범사에 그를 인정하라 그리하면 네 길을 지도하시리라 7)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지 말지어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악을 떠날지어다 8) 이것이 네 몸에 양약이 되어 네 골수로 윤택하게 하리라 (잠언3:5-8)

 

2) 둘째 우리는 맨 나중에 태어났기 때문에 경건한 탐구자가 되어야 하며, 찬양하고 예배하는 자들이 되어야 마땅합니다. 우리가 만약 처음 만들어졌고 천사들과 만물이 우리 다음에 만들어졌다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하신 일을 그들보다 더 많이 안다고 주장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 위대한 일들 중 아무 것도 본 적이 없이 제일 늦게서야 세상에 태어났습니다. 우리에게는 모든 게 신비롭고, 모든 게 미지의 영역입니다. 그건 마치 보물찾기를 하는 아이와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우주와 만물에 신비롭게 감추어 두신 온갖 귀한 것들을 하나하나 찾아낼 때마다 그 오묘하신 솜씨와 자애로우신 일들을 감사하고 찬미하고 더욱 드러내는 일을 맡은, 지극히 사랑스러운 존재들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의 창조의 동산을 휘젓고 뛰어다니는 버르장머리 없는 아이들로 만들기를 원치 않으셨습니다. 볼이 상기 된 채로, 모든 것을 아름답게 지어 놓으시고, 모든 것을 누리도록 허락해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한 마음을 가득 품은, 점잖고 예의바르고 사랑스러운 찬미자들, 그런 예배자들을 원하신 것입니다.

 

“23) 아버지께 참으로 예배하는 자들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아버지께서는 이렇게 자기에게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시느니라 24)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할지니라 (요한복음4:23-24)”

 

3) 셋째 맨 마지막에 세상에 옴으로써 우리는 청지기 의식을 배우도록 되어 있었습니다. 이 세상에서 마치 내가 주인인양 착각하지 못하도록, 처음부터 의도되어 있다는 말씀입니다. 내가 오기 이전에 세상은 모든 것이 다 질서를 갖추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있었고 하나님은 마땅히 존귀와 영광을 받으실 주님으로 거기 계셨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하나님께서 소개해 주시는 천지와 만물을 그분의 뜻대로 다스려야 한다는 책임을 맡은 청지기로 부르심을 받은 것입니다. 내 인생 전체가 하나님의 뜻을 실현해야 하는 그분의 종인 것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누가복음17:7-10)에서 이 점을 분명하게 일깨우셨습니다.

 

“7) 너희 중에 뉘게 밭을 갈거나 양을 치거나 하는 종이 있어 밭에서 돌아오면 저더러 곧 와 앉아서 먹으라 할 자가 있느냐 8) 도리어 저더러 내 먹을 것을 예비하고 띠를 띠고 나의 먹고 마시는 동안에 수종들고 너는 그 후에 먹고 마시라 하지 않겠느냐 9) 명한 대로 하였다고 종에게 사례하겠느냐 10)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의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할지니라 (누가복음17:7-10)”

 

종이 절대로 마음속에 품어서는 안 되는 가장 대표적인 것이 무엇일까요? 그것은 자존심과 제멋대로 하고 싶은 고집입니다. 그 두 가지를 가지고는 주인을 섬길 수가 없습니다. 제 이기적인 권리를 주장하는 싸움꾼의 심정으로는 절대로 종의 역할을 할 수 없습니다. '주님, 말씀하옵소서, 제가 듣겠나이다. 명령만 내리소서, 제가 시행하겠나이다.' 이런 자세가 종의 자세인 것입니다. 하나님과 말씀의 권고 앞에서 늘 이렇게 눈빛과 말투가 순종적이고 부드러운 여러분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억울하다구요? 아니요. 하나님 앞에서는 그것이 우리의 명예이며 자랑이며 칭찬과 영광이 될 것입니다. 우리가 경외하는 종 된 마음을 하나님께 묶어 바칠 때 주님은 오히려 우리를 지극히 높이셔서 만물을 우리의 발아래 두게 하시고 다스리고 정복하는 왕으로 삼아 주실 것입니다.

 

타락한 인류가 도무지 이 종된 마음을 나타내지 못하고 ‘목이 곧고 완악하여 교만한 마귀의 모습’으로 일관하자 하나님께서는 성자 하나님을 세상에 보내셔서 원래 창조될 때의 참다운 인간이 어떤 모습이었는지를 보여주셨습니다. 우리 주님은 아버지께 죽기까지 복종하는 종 된 마음을 보이셔서 우리가 영원히 본받을 표준을 나타내셨습니다.

 

“5)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7) 오히려 자기를 비어 종의 형체를 가져 사람들과 같이 되었고 8)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셨으매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9)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10)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 있는 자들로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11)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 (빌립보서2:5-11)”

 

종 된 마음을 나타내는 것은 이론이 아니고 실제적인 태도와 행동이어야 합니다. 바울이 우리에게 그리스도의 마음을 품으라고 권고하게 된 배경에는 우리의 교만하고 완고해지기 쉬운 죄의 성향을 알고 그것을 꺾고 낮아지라고 권면해야 하는 실제적인 상황이 있었던 것입니다. 이 구절의 바로 앞에서 바울을 이렇게 권면합니다.

 

“1)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무슨 권면이나 사랑에 무슨 위로나 성령의 무슨 교제나 긍휼이나 자비가 있거든 2) 마음을 같이하여 같은 사랑을 가지고 뜻을 합하며 한 마음을 품어 3) 아무 일에든지 다툼이나 허영으로 하지 말고 오직 겸손한 마음으로 각각 자기보다 남을 낫게 여기고 4) 각각 자기 일을 돌아볼 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케 하라 (빌립보서2:1-4)”

 

이것이 바로 종 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나타내야 하는 전형적인 태도입니다. 부디 힘써 낮아지는 자세와 태도를 익히시며 주님을 따라 하시기 바랍니다. 그러실 때에라야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높이 들어 더욱 존귀하게 만들어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 전체를 통해서 궁극적으로는 하나님 다음 가는 신분 그분의 자녀라는 영광스러운 이름을 얻을 존재들이라고 약속받고 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는 어린양의 신부라는 이름으로 성자 하나님의 신부라는 더욱 높고 신비스러운 신분으로도 초대함을 받습니다. 우리는 또한 영원무궁토록 신의 성품에 참여하여 끝없이 하나님을 닮아갈 수 있는 특별하고도 특별한 존재들입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하나님과 만물 앞에서 결코 교만할 수 없는 맨 나중에 태어난 존재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늘 하나님과 천사들 앞에서 겸손한 태도로 가르침을 받고 하나님의 영원하신 계획을 받들며 매일 자라나가는 품격 높은 왕자와 공주들이 되어야 하며, 하나님께로 늘 경배와 찬양을 돌려 드리는 참된 예배자들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심혈을 기울이신 존재>

 

인간의 창조 기사를 읽으면서 경건한 학자들이 또 한 가지 은혜롭게 관찰해 놓은 사실은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 친히 원탁회의를 하신다는 점입니다.

 

"26)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 그로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육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자 하시고 27)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창세기1:26-27)"

 

창세기 자체에서는 아직 그 존재의 신비를 선명하게 드러내시지는 않지만 영원 전부터 삼위일체로 존재하신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서 인간의 창조를 친히 의논하고 계신 장면입니다. 하나님께서 의논을 하신다는 표현은 단지 인간의 입장에서 표현하자면 그렇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신비로움을 말로는 다 할 수 없지만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내용으로 표현하자면 하나님은 의논도 하시고, 하나님은 기뻐하시고, 하나님은 후회도 하시고, 질투도 하시고 그러십니다. 이런 표현법을 '신인동형적인 표현이라'고 합니다. 그렇게 우리가 이해할 수 있는 내용으로 표현해 볼 때 하나님은 다른 천지와 만물을 지으실 때에는 그저 '있으라, 되어라, 채워라' 하고 명령하시지만 인간을 지으실 때만큼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자' 하면서 의논을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의 신적인 영광의 모든 심혈을 기울여서 최상의 존재로 우리를 빚어주신 것입니다. 그런 까닭에 우리는 지극한 감사와 더불어 자기 자신의 가치를 무엇보다도 귀한 것으로 여길 줄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오만한 마음을 가지라는 말씀이 아니고 경건한 자기 확신을 가지시라는 말씀입니다.

 

인간은 이렇게, 우리 식으로 표현하자면 ‘하나님께서 온 힘을 다하여 지어주신’ 너무나 존귀한 존재이기 때문에 쉽게 지우개로 지워버릴 수가 없습니다. 틀린 답을 썼을 때, 에이 없던 것으로 하자 그러고 모두 싹 쓸어서 존재를 사라지게 하고 새로 만들 수가 없는 겁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입혔기 때문에 영원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육체가 죽는다고 해서 끝나는 게 아니고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우리는 언제까지나 존재하는 겁니다. 타락하고 나서 그 마음이 부패하고 망가진 존재가 되었어도 하나님과 분리되어 지옥에 갇힌 채로라도 영원히 존재할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는 만들어질 때 너무나 귀한 재료인 하나님의 형상으로 빚어져서 결코 소멸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귀한 만큼 책임도 크게 따르는 겁니다. 적어도 '영생'이라는 막중한 책임을 우리는 져야만 합니다. 하나님과 함께하는 영광과 행복의 영생이냐, 하나님과 영원히 단절된 슬피 울며 이를 갈아야 하는 영생이냐를 생각하시면서 신앙이라는 주제를 결코 소홀히 여기지 않는 여러분과 제가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지으실 때 삼위일체가 마주 앉아 신중히 의논하시고 그토록 심혈을 다 기울여 만들어 주신 만큼 우리도 그런 하나님께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예배할 줄 알아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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