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1장-3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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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창1:26-28 --- 하나님의 형상
진주호 2015-01-02 추천 0 댓글 0 조회 472

<하나님의 형상>

 

지난 시간에는 우리 인간들이 모든 만물이 다 창조되고 나서 맨 마지막에 창조되었다는 것을 통해 우리가 존귀한 대접을 받으며 세상에 등장했다는 사실과 더불어 겸손한 위치에 있어야 한다는 말씀을 나눴습니다. 우리는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회의까지 열어서 심혈을 기울여 만드신 존재라는 말씀도 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인류의 최종 위치는 천사도 부러워하는 하나님 다음 가는 존재인 만큼 책임감과 자부심을 가지고 스스로의 인생을 가치 있게 가꾸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수 있어야 한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오늘은 같은 본문에서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부분에 대해서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인간을 만드신 재료를 생각해 보면 육신은 흙이라고 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육체적인 기능이나 시스템만으로 본다면 동물들이나 우리나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둘 다 흙에서 취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그토록 특별하고 존귀해지는 점은 또 다른 재료인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부분이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아담을 흙으로 빚으신 후에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셨고, 그래서 아담은 살아 있는 생령이 되었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담 이후로는 대대 후손에게 유전을 통해서 전해지는 그 특별한 선물이 '하나님의 형상'인 것입니다.

 

성경에서는 분명히 하나님을 가리켜 '영이신 하나님'이라고 가르칩니다. (야고보서1:17)에 "각양 좋은 은사와 온전한 선물이 다 위로부터 빛들의 아버지께로서 내려오나니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 하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육체를 가지고 계시지 않다는 고백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이 가진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것이 우리의 생김새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은 쉽게 알 수 있습니다. 우리의 생김새는 단지 하나님 솜씨의 다채로움의 표현일 뿐입니다. 우리끼리야 서로 누가 예쁘니 아름답니 하면서 미인을 뽑고 그러지만 하나님의 눈에는 외모라는 건 다 아름다운 겁니다. ‘장미 꽃이 예쁜가요, 호박 꽃이 예쁜가요?’ 예, 다 예쁩니다. 어느 꽃이 예쁘다고 말하는 건 우리 각자의 편협한 취향일 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영이시기 때문에 외모가 아니라 우리 마음과 영혼의 모양을 보십니다. 하나님의 형상이 우리 안에서 싱싱한 모습으로 살아 있는지, 아니면 시들고 부패하여 냄새를 피우고 있는지 말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형상은 과연 무엇을 말하는 것일까요? 교리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이 대목에서 '하나님의 속성'을 이야기 합니다. 하나님의 속성에는 비공유적인 속성과 공유적인 속성이 있습니다. 비공유적 속성이란 오직 하나님만이 가지고 계신 초월적인 속성을 말하고 공유적인 속성이란 인간에게도 나눠주신 그분의 아름다운 성품들을 말하는 것입니다.

 

비공유적 속성에는 1) 첫 번째로 자존성이 있습니다. 스스로 존재하시는 능력을 말합니다. 피조물인 우리는 결코 스스로 존재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시고 붙들어 주셔야만 존재하는 의존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스스로 존재하시는 분이시고 그 어떤 존재에게도 의존되지 않은 절대적인 독립성을 가지고 계십니다. 2) 두 번째는 불변성입니다. 하나님은 영원토록 변함이 없으십니다. 모든 피조물들은 자기 존재의 본질을 영원토록 한결 같이 유지할 힘이 없습니다.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변하고 흘러갑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간사의 수많은 시끄러운 일들이 발생합니다. 우리가 변하는 존재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검은 머리가 파 뿌리가 되도록 변치 말고 사랑하며 삽시다’ 그 약속을 할 때는 분명히 진실이었는데 3년 정도 지나면 그게 다 달라진다는 사실입니다. 우리는 영원히 변치 않으시는 하나님께서 우리 존재를 붙들어 주시지 않으면 늘 변하고 요동칠 수밖에 없는 존재들입니다. 3) 세 번째 하나님께는 무한성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장소적으로는 안 계신 곳 없이 편재(偏在)하시는 분이시고, 시간적으로는 영원하시며, 본질로는 절대적이시며 완전하십니다. 이런 속성은 오직 하나님께만 있는 하나님의 모습으로써 오직 경배와 찬양의 대상입니다.

 

공유적 속성은 오늘 우리가 살펴보고 있는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말과 같은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닮은 존재로서 우리를 지으시면서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가지고 계신 속성들을 닮도록 하셨습니다. 물론 우리 속에 들어 있는 속성들이 하나님의 것과 같이 완전하고 영원한 것은 아닙니다. 우리는 그분의 모양과 형상일 뿐입니다. 달리 말하면 실체이신 그분이 없으면 그림자처럼 사라질 것들이 우리가 가진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말씀입니다.

 

예를 들자면 여러분이 거울에 자신을 비쳤을 때와 비슷합니다. 거울 속에는 여러분과 꼭 닮은 형상이 서 있습니다. 그 형상은 너무도 근사하게 여러분을 닮았습니다. 그러나 그 형상은 여러분이 있기 때문에 존재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대하여 거울 속의 형상과 같은 존재라는 뜻입니다.

 

그렇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허락하신 자신의 형상으로서의 속성 중에서 1) 첫 번째는 지식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아시는 분이십니다.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에게도 지식이 있어서 많은 것들을 학습하고 배우며 자라갈 수 있습니다. 2) 두 번째는 지혜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아실뿐만이 아니고 사물들의 본질을 꿰뚫어 보시는 지혜를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들도 하나님의 형상으로써 지혜로움을 갖추고 있습니다. 3) 세 번째는 진실하심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내적 본질과 계시와 그리고 모든 피조물들과의 관계에 있어서 완전히 신실하십니다. 그래서 인간에게도 이 진실함을 새겨주셨습니다. 우리가 서로 믿고 살아갈 수 있는 것은 이 속성이 우리 안에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4) 네 번째는 권능입니다. 다스리고 통치하시는 능력을 말합니다. 5) 다섯째는 거룩하심입니다. 하나님은 도덕적으로 완전하시며, 다른 모든 피조물과는 절대적으로 구별되시는 분이십니다. 인간도 도덕적인 의가 있으며 하나님께로 향해 구별되는 거룩함이 있습니다. 6) 여섯 번째는 공의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거룩함을 모독하는 모든 것에 대하여 분노하시고 심판하시는 완전성을 가지십니다. 인간에게도 의로운 분노가 새겨져 있습니다. 7) 일곱째는 선하심입니다. 하나님께서 피조물들에게 대한 관대하심과 자비로우심을 의미합니다. 우리의 성품에도 이러한 선함이 깃들게 하셨습니다. 8) 마지막으로는 사랑입니다. 이 속성은 하나님의 모든 속성과 모든 완전하심의 중심이 되는 속성입니다. 이것은 죄인에게 까지 미치는 긍휼 자비 은총 그리고 오래 참으심 등으로 표현되는 속성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말할 때 우리가 모든 것을 다 가지고 있어도 이 사랑이 없으면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됩니다.

 

이런 것들은 성경 전체에서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내용을 추려내어 정리해 준 교리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가지고 계신 여러 속성들 중에 공유적인 속성들을 부여받아서, 이 세상에다가 하나님을 반영하는 존재로 걸어 다니고 있습니다. 천지와 만물 중에서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명예로운 이름은 오직 우리 인간에게만 주어져 있습니다. 이 말의 뜻은 우리가 하나님께서 만드신 처음의 모습 그대로 존재했었다면 서로를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하나님을 가장 잘 느낄 수 있게 만드는 존재라는 뜻입니다.

 

'그 사람을 보면 하나님을 알 수 있게 되는 존재' 그러면 누가 생각나시죠? 하나님 아버지를 보여 달라는 빌립의 말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본 것이다'라고 말씀하셨던 우리 예수님이 떠오릅니다. 아담의 후손들은 모두 하나님의 형상을 심각하게 훼손당해서 마귀의 형상을 보여줄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새로운 아담으로 우리에게 오신 예수님께서 망가지지 않은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완전한 인간의 모습을 우리에게 보여주셨습니다. 물론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하나님의 형상은 완전한 실체로서의 하나님의 충만한 형상이셨지만 우리도 타락하지 않았다면 예수님처럼 하나님이 어떤 분인지를 우리가 가진 만큼의 향기와 빛깔과 모양으로 예쁘게 드러낼 수 있었다는 뜻입니다.

 

죄로 인해서 가장 심각하게 훼손된 것이 바로 이 부분입니다. 우리에게 선물로 주셨던 하나님의 형상이 지금은 너무 심하게 왜곡되어서 이제는 마귀의 형상으로 변해 있다는 것을 알게 해주는 것이 (로마서1:29-31)의 말씀입니다. 거기에는 지금 죄 아래 있는 우리들 속에 들어있는 전혀 다른 형상들이 나열되고 있습니다.

 

"29) 모든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한 자요 시기, 살인, 분쟁, 사기, 악독이 가득한 자요 수군수군하는 자요 30) 비방하는 자요 하나님의 미워하시는 자요 능욕하는 자요 교만한 자요 자랑하는 자요 악을 도모하는 자요 부모를 거역하는 자요 31) 우매한 자요 배약하는 자요 무정한 자요 무자비한 자라"

 

이런 모습들은 하나님의 형상 부분이 썩고 부패하여 드러난 심히 일그러진 타락한 인간의 자화상입니다. 반면에 원래 지음 받은 하나님의 형상으로서의 우리의 모습은 (에베소서5:9)에 묘사하는 바로는 "빛의 열매는 모든 착함과 의로움과 진실함에 있느니라" 라고 표현되어 있고, (갈라디아서5:22-23)에는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 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런 아름다운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는 데 힘쓸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 일을 세상은 하려고도 하지 않고 할 수도 없는 일이지만 우리는 성령께서 거듭난 생명을 주셨기 때문에 믿음 안에서 행하려는 의지만 가지면 다시 회복할 수 있는 능력과 힘이 우리 안에 들어와 있습니다. 이 회복을 위해서 자신의 내면에서 선한 싸움을 매일 싸우는 사람에게 성령께서는 매순간 새 힘을 또 공급해 주실 것입니다.

 

<사랑으로 연합되어 하나인 존재>

 

하나님의 형상과 관련하여 이렇게 성품적인 면 말고 최근에 주목받고 있는 또 하나의 요소는 인간이 가지고 있는 관계적인 모습입니다. 학자들은 인간이 홀로 존재하지 않고 관계 속에서 지음을 받았다는 사실 또한 하나님의 형상의 한 부분이라고 말합니다. 오늘 읽은 성경의 본문 중에는 (창세기1:27)의 말씀이 바로 그 부분입니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하나님께서는 성부와 성자와 성령으로 존재하시면서 완전한 하나를 이루고 계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구분되는 자아를 가지셨지만 사랑이라는 내용으로 신비롭게 연합하여 영원히 한 분이십니다. 그 거룩한 연합을 이룬 삼위일체의 하나님께서는 인간도 자신을 닮은 연합된 사랑의 존재로 빚으셨습니다. 즉 남자와 여자로 지으셨다고 말씀하십니다. 인간이 만약 타락하지 않아서 이기적인 존재로 전락하지만 않았다면 인간들이 가지는 관계와 사랑은 하나님의 존재 양식을 가장 근접하게 표현하는 멋진 계시의 도구일 수 있었습니다. 천사들은 도무지 흉내 낼 수 없는 인간들만이 가진 놀라운 특징이 바로 이것입니다.

 

구별된 객체이면서도 한 몸이라고 밖에 할 수 없는 '사랑의 연합' 그것은 그 자체로 신비로움입니다. 예를 들면 인간들이 진실한 사랑으로 절실히 하나가 되면 둘은 구별된 객체이면서도 틀림없는 한 몸으로서의 특징을 나타냅니다. 상대방의 모든 기쁨과 고통을 자기도 느끼고 상대방을 자기의 목숨보다 더 귀하게 여기는 일이 가능해지는 것입니다. 말 그대로 한 몸이 되는 것입니다. 그 둘이 하나가 되어 살다보면 또 다른 하나가 태어납니다. 그렇게 태어난 자녀는 두 사람의 생명보다 더욱 소중하니 셋이 아니고 여전히 하나입니다.

 

솔로몬이 왕으로 있을 때 두 여자가 한 아기를 놓고 서로 자기 아이라고 주장하자 살아있는 아이를 반으로 잘라서 공평하게 나눠주라는 유명한 판결을 내렸습니다. 그러자 한 여자가 자지러지면서 안 된다고 소리쳤습니다. 자기는 그냥 포기할 테니 제발 아기를 살려서 상대방에게 주라고 울부짖었습니다. 진짜 엄마는 자기의 아이와 떨어진 객체가 아닌 한 몸인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사랑으로 연결된 관계는 서로 떨어진 객체가 아니고 목숨을 다해 하나가 된 존재라는 가장 확실한 증거를 보여줍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계획 속에서의 인류는 수십억 수백억의 사람들이 사랑이라는 내용으로 언제나 '하나'이어야 했습니다. 아마도 천국에서는 우리가 다시 이 완전한 사랑으로 하나 됨을 실현하여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고 우리는 서로 몸의 각부분을 이루는 한 존재로 살아갈 것입니다. 아무도 소외되거나 무시되는 일이 없는 모두가 서로를 생명처럼 소중하게 여기는 하나! 그게 바로 원래 계획하셨던 하나님의 형상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회복시켜야 할 하나님의 형상으로써 '사랑'만한 숙제가 없는 겁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고 사랑으로 연합해 계신 영원한 삼위일체의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우리가 그 믿음 안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사람이 되었다면 서로 사랑하여 힘써 하나 됨을 추구해야할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현재의 우리들은 바로 이 내용이 심각하게 망가져 있습니다. 사랑할 줄 모르고 책임질 줄 모르고 지극히 이기적인 존재가 되어버린 것이 타락한 우리들의 현주소입니다. 타락하기 전 아담이 자신의 몸에서 재료를 취해서 만들어진 하와를 처음 만났을 때 그녀를 향해 불렀던 사랑의 노래가 있습니다.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중의 살이라 이를 남자에게서 취하였으니 여자라 하리라" 그런데 타락하고 난 후에 책임을 묻는 하나님께 대답한 그의 말은 "하나님이 내게 주신 저 여자 때문에 내가 선악과를 먹었습니다." 그랬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용서라는 은혜의 복음을 받아들이고 난 이후 우리가 해야 할 일 중 제일 큰 일은 '사랑하는 존재'로의 회복입니다. 저마다 아담을 통해 물려받은 이기적인 사악함을 내버리고 하나님의 원래의 형상인 사랑하는 존재가 되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요한복음13:24-35)에서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하신 것이 바로 그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은 고린도 교인들 때문에 참으로 골치가 아팠습니다. 하나님께서 음란하고 향락적인 항구도시 고린도에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시면서 사람들이 신앙생활을 잘 할 수 있도록 각양 성령의 은사를 풍성하게 주셨습니다. 방언하는 사람들, 통역하는 사람들, 감추어진 일들을 꿰뚫어 볼 수 있게 하신 은사, 병 고치는 은사 기타 등등 모든 것이 풍성했습니다. 그러나 고린도 교인들은 이 귀한 은사들을 가지고 서로 잘난 척하고 비교하고 패를 가르는 일에 사용하고 말았습니다. 세상에서 가장 비싼 주먹덩이 만한 보석을 주었더니 나무토막에 비끌어 매서 돌도끼를 만들어 가지고 서로 패싸움하는데 써먹는 것과 꼭 같았습니다. 그런 어리석음에 대해 야단을 치는 것이 고린도 전서 13장입니다.

 

"1)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2) 내가 예언하는 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것도 아니요 3)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어 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4) 사랑은 오래 참고 사랑은 온유하며 투기하는 자가 되지 아니하며 사랑은 자랑하지 아니하며 교만하지 아니하며 5) 무례히 행치 아니하며 자기의 유익을 구치 아니하며 성내지 아니하며 악한 것을 생각지 아니하며 6) 불의를 기뻐하지 아니하며 진리와 함께 기뻐하고 7) 모든 것을 참으며 모든 것을 믿으며 모든 것을 바라며 모든 것을 견디느니라 8) 사랑은 언제까지든지 떨어지지 아니하나 예언도 폐하고 방언도 그치고 지식도 폐하리라 9) 우리가 부분적으로 알고 부분적으로 예언하니 10) 온전한 것이 올 때에는 부분적으로 하던 것이 폐하리라 11) 내가 어렸을 때에는 말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깨닫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고 생각하는 것이 어린아이와 같다가 장성한 사람이 되어서는 어린아이의 일을 버렸노라 12) 우리가 이제는 거울로 보는 것같이 희미하나 그 때에는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볼 것이요 이제는 내가 부분적으로 아나 그 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신 것같이 내가 온전히 알리라 13)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에 제일은 사랑이라 (고린도전서13:1-13)"

 

우리 모두 이러한 사랑의 모습을 회복하여 가지게 되기를 간절히 소원하시고 부지런히 연습하기를 바랍니다.

 

<정복하고 다스리는 특징>

 

하나님의 형상의 마지막 부분은 우리에게 맡기시는 사명과 관련이 있습니다. 흔히들 문화명령이라고 부르는 본문의 구절입니다. (창세기1:28)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새와 땅에 움직이는 모든 생물을 다스리라 하시니라"

 

다스리고 통치하는 능력과 권세 그것도 하나님의 형상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모든 일을 규모 있고 질서를 이루도록 관리하고 다스려야 할 책임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질서의 하나님이시고, 지혜로 천지와 만물을 다스리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모든 일을 본받고 닮아 가면서 삶의 모든 부분들을 다스리고 통치하여 질서를 잡아 나가셔야 합니다. 그게 훗날 신약 서신서에서 규모 없는 자들 무질서 한 자들에게 강력한 권고를 하는 이유가 됩니다. (데살로니가전서5:14)에서는 ‘또 형제들아 너희를 권면하노니 규모 없는 자들을 권계하며 마음이 약한 자들을 안위하고 힘이 없는 자들을 붙들어 주며 모든 사람을 대하여 오래 참으라’ 그랬습니다. (데살로니가후서3:6-12)에는 더 재미있고 직설적인 권고가 나옵니다.

 

"6) 형제들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너희를 명하노니 규모 없이 행하고 우리에게 받은 유전대로 행하지 아니하는 모든 형제에게서 떠나라 7) 어떻게 우리를 본받아야 할 것을 너희가 스스로 아나니 우리가 너희 가운데서 규모 없이 행하지 아니하며 8) 누구에게서든지 양식을 값없이 먹지 않고 오직 수고하고 애써 주야로 일함은 너희 아무에게도 누를 끼치지 아니하려 함이니 9) 우리에게 권리가 없는 것이 아니요 오직 스스로 너희에게 본을 주어 우리를 본받게 하려 함이니라 10) 우리가 너희와 함께 있을 때에도 너희에게 명하기를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 하였더니 11) 우리가 들은즉 너희 가운데 규모 없이 행하여 도무지 일하지 아니하고 일만 만드는 자들이 있다 하니 12) 이런 자들에게 우리가 명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권하기를 종용히 일하여 자기 양식을 먹으라 하노라"

 

한 마디로 삶을 다스리고 통치하는 일을 잘 하라는 명령입니다. 즉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라는 명령이기도 하구요. 우리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일은 산속이나 수도원에 들어가서 기묘한 신비를 추구하는 일이 아니고 예수님께서 이루어주신 속죄의 공로를 입고 가장 평범한 삶의 하루하루를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창조의 사명대로 규모 있고 질서 있게 살아내는 일입니다. 그런 열심으로 매일 매일을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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