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 되시는 주님>
우리는 살아가면서 절실하게 느끼는 문제들을 다 가지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은 건강이 절실하고, 어떤 사람은 돈이 절실하고, 어떤 사람은 사랑이 절실하고, 어떤 사람은 자녀가 절실하고, 어떤 사람은 성공이 절실합니다. 이것만 있으면 내 인생이 정말 행복해질텐데... 그런 소원과 꿈을 저마다 다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를 진단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인간들의 모든 갈망에 대한 진정한 해결책은 다름 아닌 '하나님 자신'이라고 소개하십니다. "네 행복과 만족을 위해서 진정으로 필요한 건 바로 나 하나님이란다"
창세기 15장에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이제 막 믿음에 눈을 떠가는 아브라함이 등장하는데 하나님께서는 그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셔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이상 중에 아브람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아브람아 두려워 말라 나는 너의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창세기15:1)"
하지만 이 때 아브라함이 가지고 있던 현실적인 문제는 나이는 자꾸 들어가는데 자기에게는 대를 이을 상속자가 생기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래 전 자기에게 나타나셔서 하늘의 별같이 바다의 모래같이 많은 후손을 주시겠다면서 가나안으로 이끌어 오셨으면서도 정작 세월이 하염없이 흐르는데 하늘의 별은 고사하고 단 하나의 아들도 주지 않고 계신 것입니다. 답답한 아브라함은 그 심정 그대로를 하나님 앞에 꺼내 놓습니다.
"2) 아브람이 가로되 주 여호와여 무엇을 내게 주시려나이까 나는 무자하오니 나의 상속자는 이 다메섹 엘리에셀이니이다 3) 아브람이 또 가로되 주께서 내게 씨를 아니주셨으니 내 집에서 길리운 자가 나의 후사가 될 것이니이다.(창세기15:2-3)"
아브라함은 삶의 문제로 고민이 가득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내가 너의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 하고 말씀하십니다. '너의 참된 위로와 만족은 바로 나 하나님이다' 하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조금 더 뒤로 가면 (민수기18:20)에 하나님께서 제사장인 아론과 그의 후손들을 기업의 땅 분배받는 권리에서 제외시키면서 하시는 말씀이 나옵니다.
"여호와께서 또 아론에게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의 땅의 기업도 없겠고 그들 중에 아무 분깃도 없을 것이나 나는 이스라엘 자손 중에 네 분깃이요 네 기업이니라"
하나님께서 친히 거룩한 제사장 족속인 아론 자손들의 분깃이요 기업이 되어주시겠다는 의미심장한 말씀입니다. 신약 성경은 성도 여러분 모두를 향해서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론 가문에게 ‘내가 너의 분깃이요 영원한 기업이다’ 하고 말씀하신 주님은 여러분에게도 동일하게 ‘내가 너의 진정한 만족이 되어주마’ 하고 약속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계속해서 솔로몬이라는 왕을 세우시고 그에게 전무후무한 지혜와 부와 영광을 허락하시고는 모든 지식의 끝, 쾌락의 끝, 소유와 성취와 명성의 끝을 다 추구해 보도록 해주셨습니다. 솔로몬의 끝없는 지적인 호기심은 그 모든 것을 실험해보고 누려보게 했고 그 마지막 결론은 허무하고 허무하다는 것으로 내립니다. 그는 자기가 살았던 극치의 삶을 다 헛되다고 결론을 내린 후에 전도서의 마지막에서 우리에게 권면하는 말이 '네 창조자를 기억하라'는 것이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를 통해서 지적하신 말씀도 빼놓을 수 없습니다. 유명한 55장의 말씀을 기억하실 것입니다.
"1) 너희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2)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 주며 배부르게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나를 청종하라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마음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 3)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 영혼이 살리라 내가 너희에게 영원한 언약을 세우리니 곧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은혜니라 4) 내가 그를 만민에게 증거로 세웠고 만민의 인도자와 명령자를 삼았었나니 5) 네가 알지 못하는 나라를 부를 것이며 너를 알지 못하는 나라가 네게 달려올 것은 나 여호와 네 하나님 곧 이스라엘의 거룩한 자를 인함이니라 내가 너를 영화롭게 하였느니라 (이 때는 다윗이 죽은 지 수백년이 흐른 시점입니다. 그렇다면 이 다윗이 누구겠습니까? 일찍이 세상에 보내시겠다고 약속하신 그 메시야, 다윗의 후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예언하는 말씀입니다) 6)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7) 악인은 그 길을, 불의한 자는 그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나아오라 그가 널리 용서하시리라.(이사야55:1-7)"
장차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셔서 백성들을 친히 안아주실 하나님 자신을 소개하고 계신 말씀입니다. 이 말씀의 예언을 따라 우리에게 오신 예수님은, 오셔서 동일한 말씀으로 우리를 일깨우십니다. 예수님은 이 세상에 오셔서 다른 축복을 말씀하신 것이 아니고 태초부터 해오신 말씀대로 "내가 너희의 생명이며, 내가 너희의 만족이며, 내가 너희 목마름을 해결할 영원한 생수요, 내가 너희 굶주림을 해결할 하늘의 양식이며, 내가 구원이며, 내가 영생이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13)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이 물을 먹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14)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요한복음4:13-14)"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곧 생명의 떡이니 내게 오는 자는 결코 주리지 아니할 터이요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라.(요한복음6:35)"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한복음14:6)"
"1)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고 눈을 들어 하늘을 우러러 가라사대 아버지여 때가 이르렀사오니 아들을 영화롭게 하사 아들로 아버지를 영화롭게 하게 하옵소서 2) 아버지께서 아들에게 주신 모든 자에게 영생을 주게 하시려고 만민을 다스리는 권세를 아들에게 주셨음이로소이다 3)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요한복음17:1-3)"
또한 성경은 사도바울을 통해서 우리에게 성령님을 소개할 때에도 오직 그분만이 우리의 모든 허탄하고 무익한 정욕을 소멸시키시고 참된 열매를 맺게 하실 승리와 만족의 비결이심을 제시합니다.
"16) 내가 이르노니 너희는 성령을 좇아 행하라 그리하면 육체의 욕심을 이루지 아니하리라 17) 육체의 소욕은 성령을 거스리고 성령의 소욕은 육체를 거스리나니 이 둘이 서로 대적함으로 너희의 원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니라 18) 너희가 만일 성령의 인도하시는 바가 되면 율법 아래 있지 아니하리라 19) 육체의 일은 현저하니 곧 음행과 더러운 것과 호색과 20) 우상 숭배와 술수와 원수를 맺는 것과 분쟁과 시기와 분냄과 당짓는 것과 분리함과 이단과 21) 투기와 술 취함과 방탕함과 또 그와 같은 것들이라 전에 너희에게 경계한 것같이 경계하노니 이런 일을 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요 (술먹는 사람, 거짓말하는 사람, 분내는 사람은 천국 못간다 이 얘기가 아니구요 그걸 가지고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이 세상에 있는 동안에 부지런히 성령으로 충만해져서, 성령께 의지해서 그런 것들을 소멸시켜 나가야 한다 그 뜻입니다.) 22) 오직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희락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23) 온유와 절제니 이같은 것을 금지할 법이 없느니라.(갈라디아5:16-23)"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싶은 가장 중요한 진리의 핵심은 언제나 '하나님 자신'이셨습니다. '내가 너희들의 참된 생명이며, 다함이 없는 즐거움이며, 가장 충만한 만족이며, 참된 가치이며, 도달해야할 목표이니라' 하고 말씀하시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는 (창1:1)을 통해서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 라는 선언을 들을 때, 천지와 만물에 눈과 마음을 빼앗기기 전에 먼저 '하나님'께로 시선을 고정시킬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 관점으로 (창1:1)을 다시 읽으면 우주와 만물이 창조되기 이전 '영원한 태초에 모든 진선미의 근원이시고 모든 만물들의 목적이 되시는 전능하고 위대하신 하나님이 계셨다'는 고백이 자연스럽게 나오고 그 크고 영화로우신 하나님 앞에 경건하게 엎드리는 믿음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삼위일체의 하나님>
그런데, 기독교 신앙을 가지지 않은 이 세상의 많은 사람들도 이렇게 크고 위대한 하늘의 존재에 대한 막연한 인식은 다 가지고 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하나님께서 지으신 그분의 피조물들이면서도 죄로 인해 마음이 어두워져서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알지 못하고 막연한 권세와 힘으로만 그분을 느끼고 묘사합니다. 조물주라고도 하고 천지신명이라고도 하고 운명의 신이라고도 하고 옥황상제라고도 하고 제각각 붙이고 싶은 이름으로 제멋대로 그 이름을 부르고는, 그분이 무얼 의도하시고 어떤 일을 하기 원하시는지에 대해서는 도무지 관심이 없습니다. 다만 그 신의 비위를 맞추어서 어떤 떡고물을 받아먹을 수 있을까하는 데에만 집중합니다. 높고 존귀하신 영광의 하나님을 자기들의 뒤치다꺼리나 하는 종으로, 우상으로 전락시켜 버리고 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대한 진리의 말씀을 계시 받은 유대인들조차도 하나님의 참된 형상에 대한 이해를 올바로 갖지 못하고 두렵고 공포스러운 이름으로만 하나님을 알았습니다. 그 사람들은 히브리어에 하나님의 이름인 야훼라는 단어가 나오면 감히 소리내어 읽지도 못하고 '아도나이'라는 간접적인 말로만 하나님을 호칭하고 지나갔다고 합니다. 성경의 사본을 만드는 필사자들이 그 단어를 쓸 때는 붓을 빨고 먹을 새로 찍어서 쓸 정도로 극도의 두려움을 표시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성경을 통해서 알게 되는 기독교의 진리는 하나님께서는 막연한 절대자가 아니고 거룩한 삼위일체로 존재하시는 지극히 신비로우면서도 친밀하신 분이라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독생자이신 예수님을 보내시고 그분을 통해서 영원하신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을 소개하도록 하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서 거룩한 삼위일체의 신비와 영광을 분명히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창세기1:1)을 구약으로만 읽으면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하고 읽혀질 따름이지만 신약성경이 온전히 밝혀준 진리를 알고 읽는 기독교인들은 (창세기1:1)에서 '태초에 성부와 성자와 성령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하고 읽을 수 있게 됩니다. 이 문장을 다시 주인공이신 하나님께만 집중하여 고쳐 읽는다면 '태초에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서 계시니라'하는 원초적인 진리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이미 (창1:2)에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 곧 성령 하나님께서는 수면에 운행하시니라' 하는 말씀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성자 하나님은 창세기 1장 내내 반복되는 '하나님이 가라사대, 하나님이 가라사대' 하는 말씀에 나타나 계십니다. 우리 같이 불완전한 피조물들이야 자기 자신을 표현하는 수단인 언어가 단지 말에 불과하지만 영원하시고 완전한 존재이신 하나님께서는 자기를 표현하는 말씀 그 자체가 조금도 부족함 없는 하나님 자신 전부를 나타내시기 때문에 말씀 그 자체가 완전하신 하나님으로 존재하고 계신 것입니다. 말씀이 하나님과 영원히 함께 계셨고 말씀이 곧 하나님이셨다는 뜻입니다. 이러한 진리를 성령의 지도를 받아서 정확하게 고백한 사람이 바로 사도 요한이었습니다.
"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2) 그가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3)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요한복음1:1-3)"
<우리를 향하신 성부와 성자와 성령하나님의 극진한 사랑>
오늘 저는 태초부터 계신 이 삼위일체의 하나님께서 과연 어떤 모습으로 우리에게 다가와 주셨는가를 밝히고 그분의 존재하심을 통해 우리가 얼마나 큰 위로와 소망을 가질 수가 있는지를 마저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사람들이 하나님을 묘사할 때 흔히들 쓰는 말이 광대무변 하시고, 전지전능 하시고, 무소부재 하시고, 무한불변 하시고, 영원무궁 하시고, 신묘막측 하시고, 진실무망 하시다' 하는 거대한 표현들입니다. 크고 위대하신 하나님께 모두 다 어울리는 속성의 표현들이지만 그렇게만 하나님을 묘사하고 나면 그 하나님은 마치 우리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까마득한 하늘 저편의 막연한 신으로만 생각되기가 쉽습니다. 하지만 성경에서 성부와 성자와 성령 하나님을 우리에게 소개한 내용은 가장 극진한 사랑으로 우리를 대해주신 사랑의 하나님이신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삼위일체의 하나님은 우주와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이시요, 우주보다 크고 광대하신 하나님이시지만 나랑 상관이 없는 하늘 저편의 하나님이 아니시고 여러분과 제게 대하여 지극한 관심과 사랑을 가지신 친근하신 하나님, 우리의 하나님, 곧 나의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을 꼭 기억해야 합니다.
성부 하나님께 대한 가장 핵심적인 소개는 (롬5:8)과 (롬8:31-32)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로마서5:8)"
"31) 그런즉 이 일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 하리요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32)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 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로마서8:31-32)"
하나님은 온 우주의 주인이시고 권세와 능력이 무한하신 높고 위대하고 두려우신 분이시지만 그분이 바로 나를 죄와 사망에서 구해내시기 위해서 아들을 내어주신 분이십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나를 그토록 소중하게 여기시고 어마어마한 값을 치뤄서 구해내시고 자녀로 삼으셨다면 도대체 이 우주 안에서 나를 해할 자가 누구겠느냐는 것입니다. 더구나 우리 주님께서 소개해 주시는 아버지는 우리의 머리카락까지 세고 계시며 안전하게 보호하시는 자상하신 아버지이십니다. 이런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권세와 특권을 주신 것에 대하여 감사하며 여러분의 신앙의 토대를 견고하게 만드시기를 바랍니다.
성자 예수님은 (요10:14-15)에서 친히 자기 자신에게 대하여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14) 나는 선한 목자라 내가 내 양을 알고 양도 나를 아는 것이 15) 아버지께서 나를 아시고 내가 아버지를 아는 것 같으니 나는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이 놀라운 일을 600년 전에 미리 예언한 (사53:5-6)에서 우리는 주님께서 우리를 위해 행하신 놀라운 희생의 의미를 생생하게 증거받을 수 있습니다.
"5)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을 인함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을 인함이라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나음을 입었도다 6)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며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나를 위해 기꺼이 목숨을 내어 놓으신 이 예수님이 시시하고 무기력한 분이 아니고 태초부터 계신 하나님이시며 천지와 만물의 조성자시라는 사실이 우리에게 어찌 작은 위로이겠습니까? 바람과 바다를 순종하게 만드시는 권능의 주님이시면서도 자상하게 내 이름을 아시고 나를 품으시고 나를 위해 목숨을 내어주신 주님이신 것입니다. 그런 주님을 여러분이 '주님' 하고 부르고 계신 겁니다. 뿐만 아니라 주님께서는 매순간 우리에게 오셔서 문을 두드리고 계십니다. 우리가 문을 열고 영접하면 들어오셔서 우리와 함께 먹고 마시며 교제를 나누시겠다는 친밀하신 주님이십니다.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요한계시록3:20)"
그렇다면 성령님께서는 어떤 분이실까요? 단순히 신기하고 놀라운 능력을 일으키는 어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힘을 이야기 하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성령님은 우리를 향해 풍부한 표정을 가지고 계신 인격적인 하나님이십니다. 성령님은 여러분을 향하여 어떤 표정의 사랑을 가지고 계실까요? (롬8:26)을 봅시다.
"26)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빌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성령님은 성부와 성자에게서 영원히 발현되시는 '하나님의 기운' '하나님의 생기'이지만 전능하신 존재에게서 나오는 전능하신 기운은 그 자체로 영원한 신적성품을 갖추신 완전하신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신약 성경은 성령님을 우리를 위해 안타까와하시며 탄식하시며 돌보시는 분이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 하나님께서 영원토록 한결같이 얼마나 극진하신 사랑의 눈빛으로 여러분을 보고 계신지를 느끼실 수 있어야 합니다. 그 눈빛이 느껴지신다면 우리는 창세기 1장 1절을 먼저 다음과 같이 새겨들을 수 있습니다.
"태초에 성부와 성자와 성령 하나님이 계시니라"
그리고 나서 나머지가 고백되는 것입니다.
"그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천지와 만물을 창조하시니라, 아멘"
이 선언으로 인하여 여러분의 마음이 감사로 충만해지시기를 바랍니다. 감격으로 벅차 오르시기를 바랍니다. 소망의 든든함으로 굳건해지시기를 바랍니다. 그 어떤 위협이나 환난이나 칼도 우리를 흔들지 못할 것임을 확신하는 행복과 평안의 근거가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있다는 사실을 이 시간 확실히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마지막으로 하나님께서 천지를 창조하셨다는 말씀에 들어 있는 실천적인 교훈들을 몇 가지 정리해 보겠습니다.
첫째 <하나님이 주인이십니다> 하나님께서 주인공이시고, 하나님께서 주체이시고,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셔야 하고,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져야 하고, 하나님의 이름이 명예로우셔야 합니다. 나는 그 일을 이루어드려할 도구요, 무익할 종일 뿐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거꾸로 알고 있어요. 자기가 우주의 중심이고 하나님이 자기를 만족시켜 주어야 하는, 무슨 전능한 능력을 가진 자기의 종처럼 오해하고 있다 그말입니다. 이런 잘못된 신앙을 바로잡기 위해서 우리 장로교 신앙의 표준문서인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1문은 ‘인생의 제일되는 목적이 무엇입니까’ 하고 묻고있습니다. 그 대답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고 영원토록 그분을 즐거워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인이십니다.
<하나님만이 표준이십니다> 모든 아름다운 것, 모든 선한 것, 모든 참된 것, 모든 정의로운 것, 모든 공평한 것, 모든 가치, 모든 의미, 모든 질서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 것입니다. 살아가면서 조그만 행복 조그만 선행 조금만 아름다움만 보아도 그냥 지나치지 마시고 그것을 만드신 하나님, 그것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깊은 감사를 느끼며 고백하며 사셔야 합니다.
<하나님만이 푯대이십니다> 이 말은 하나님만이 만물의 목적이 되신다는 뜻입니다. 세상의 모든 만물이 주께로부터 나서 주의 뜻을 이루고 주께로 돌아가는 것입니다.
"33)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그의 판단은 측량치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34)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았느뇨 누가 그의 모사가 되었느뇨 35) 누가 주께 먼저 드려서 갚으심을 받겠느뇨 36)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영광이 그에게 세세에 있으리로다 아멘 (로마서11:33-36)"
우리가 살아가는 모든 삶의 방향이 오직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드리는 것에 초점이 맞춰지시기를 바랍니다. 예배에 나올 때에는 우리의 이 땅에 속한 소원과 기도를 잔뜩 싸가지고 왔을지라도 거룩하신 삼위일체 하나님을 알고 나서는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바라고, 하나님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그 기도와 소원이 무엇보다 앞서게 되는 참된 믿음에 도달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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