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상수훈 팔복 강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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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강 심령이 가난한 자
진주호 2019-10-08 추천 0 댓글 0 조회 403

마태복음5:1-12 --- 산상수훈 팔복1 심령이 가난한 자

 

1. 지난 시간에 우리는 산상수훈의 교훈을 알아듣기 위해서 예비적인 말씀을 나누었습니다. 평범한 인간의 마음으로는 산상수훈의 말씀은 알아듣거나 지킬 수 있는 내용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오직 죄로 오염된 우리의 옛 자아가 십자가에 못 박혀 함께 죽고 주님의 부활하심과 더불어 새로운 순종의 자아로 거듭나야만 비로소 산상수훈의 교훈들이 의미 있게 내 속으로 흘러들어 올 수 있다는 사실을 배웠습니다.

 

산상수훈을 열면 제일 먼저 등장하는 교훈이 팔복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제시하신 8가지의 복을 팔복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이 복은 제각각 다른 여덟 가지의 복이 아니고 거듭난 하나님의 백성에게 나타나는 8가지의 특징이라고 이해하시는 것이 더 정확합니다. 주님이 말씀하신 이 특징들이 내게 있어야 내가 거듭난 사람이요, 구원받은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오늘 부터 8주 동안은 이 주제에 집중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2. 첫 번째 복인 심령이 가난하다는 말을 제대로 알아들으려면 우리가 가지고 있는 선입견을 빼고 성경의 어법을 이해하셔야 합니다.

 

심령이 가난하다는 말은 쉬운 말로 풀면 마음이 가난하다는 문장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평상시에 쓰는 말로 마음이 가난하다하면 우리의 정서로는 청빈사상과 무소유의 덕목으로 먼저 연결될 위험이 있습니다.

 

아하, 예수님도 청빈사상을 가지시고 무소유를 실천하신 분이시구나!” 이렇게 오해될 가능성이 크다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성경의 어법으로 심령의 가난함은 그런 도덕적인 내용이 아니고 하나님과 관계된 영적인 내용입니다. 우리가 성경이 말씀하는 심령의 가난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그 반대가 되는 부유한 마음, 부자 된 마음과 비교를 해보아야 합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부유한 마음은 부정적인 마음의 상태입니다. 평소에 우리가 쓰는 말로는 배부른 마음인 것입니다. 이미 딴 것들로 잔뜩 배가 불러서 정작 중요한 일에 갈망도 열정도 없는 뜻뜨미지근한 마음이 배부른 마음입니다.

 

요한계시록에서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 중에서 칭찬은 없고 책망만 받은 교회 로 라오디게아 교회가 있었습니다. 몹시 세련되고 부유했던 교회입니다. 하지만 그 교회를 향하신 주님의 평가는 그들이 배가 부르다는 것이었습니다.

<요한계시록3:14-18> 14> 라오디게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라 아멘이시요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요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가 이르시되 15>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뜨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뜨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16>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 17>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18>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주님의 진리가 아닌 자기들이 좋아하는 세속의 가치들로 이미 배불러버린 교회, 눈에 보이는 외형이 세련되고 부유하고 강성하다는 것으로 만족해버린 라오디게아 교회를 향해서 주님은 이 질책을 하셨습니다.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구약에서도 하나님은 인간들의 그런 상태를 신랄하게 꾸짖고 책망하신 구절이 있습니다.

 

<이사야서55:2>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이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 주며 배부르게 하지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내게 듣고 들을지어다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너희 자신들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

 

이 본문에 등장하는 어리석은 백성들도 엉뚱한 것들로 배가 불러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의 욕망을 위해서 열심을 내고 수고하여 이미 배가 불렀습니다.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이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 주며 배부르게 하지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주님의 책망은 신랄하신 어투입니다. 그들은 욕망의 배를 불리기 위해서 무지 애를 쓰고 많은 노력과 수고를 마다하지 않지만 정작 자기들의 영혼은 허기와 갈증에 내몰려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려고 하시는 영생의 양식을 받아들일 허기와 갈증이 그들에게는 없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참된 양식과 음료를 추구하라고 권고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들의 영생복락과 진정한 행복을 위해서 제시하신 참된 양식과 음료는 태초부터 종말까지 너무나 분명하고 일관된 것이었습니다.

 

인간이 곤고함에 빠진 것은 죄로 인한 하나님과의 단절입니다. 그 굶주림의 상태 비참함의 상태를 정작 감각하지도 못합니다. 영혼이 주리고 영혼이 메마른데 정작 그 갈증과 허기를 느끼지도 못한다는 거지요. 그런 상태를 주님을 자꾸만 말씀하셔서 일깨우려 하십니다.

 

<시편107:8-14> 8>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적으로 말미암아 그를 찬송할지로다 9> 그가 사모하는 영혼에게 만족을 주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심이로다 10> 사람이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 앉으며 곤고와 쇠사슬에 매임은 11>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며 지존자의 뜻을 멸시함이라 12> 그러므로 그가 고통을 주어 그들의 마음을 겸손하게 하셨으니 그들이 엎드러져도 돕는 자가 없었도다 13> 이에 그들이 그 환난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들의 고통에서 구원하시되 14>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그들의 얽어 맨 줄을 끊으셨도다

 

하나님께서 진단하시는 인생의 가장 큰 문제는 10절과 11절입니다.

 

“10> 사람이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 앉으며 곤고와 쇠사슬에 매임은 11>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며 지존자의 뜻을 멸시함이라

 

그런데 인생들이 자기 영혼이 하나님과 단절되어서 곤고하다는 사실을 육신적인 현실이 평안하고 배부르면 전혀 모르니까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환경을 낮추셔서 허기와 갈증을 강제로라도 느끼게 하신다고 합니다.

 

“12> 그러므로 그가 고통을 주어 그들의 마음을 겸손하게 하셨으니 그들이 엎드러져도 돕는 자가 없었도다

 

그러면 그제서야 인간들이 비로소 아프다고 힘들다고 울며 하나님께 부르짖어 기도하게 된다고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은 기다렸다는 듯이 응답하셔서 환난에서 구출해 주신다고 해요.

 

“13> 이에 그들이 그 환난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들의 고통에서 구원하시되 14>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그들의 얽어 맨 줄을 끊으셨도다

 

이런 과정을 통해 강제로라도 기도하고, 그렇게라도 응답을 체험하여 그들이 얻게 되는 것은 환난과 문제가 해결되는 것만이 아니고, 그제야 눈을 떠서 하나님을 의식하는 진정한 배부름에 도달한다는 말씀이 성경이 말하는 복의 실체입니다. 이 시편의 전제가 그 은혜로우심에 대한 찬양이었습니다.

 

“8>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적으로 말미암아 그를 찬송할지로다 9> 그가 사모하는 영혼에게 만족을 주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심이로다

 

하나님께서 제시하시는 인생의 허기와 갈증에 대한 진정하고 완전하신 답은 이사야서 55장의 나머지 부분에서 분명히 예언됩니다.

 

<이사야55:3-5> 3>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로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의 영혼이 살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영원한 언약을 맺으리니 곧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은혜이니라 4> 보라 내가 그를 만민에게 증인으로 세웠고 만민의 인도자와 명령자로 삼았나니 5> 보라 네가 알지 못하는 나라를 네가 부를 것이며 너를 알지 못하는 나라가 네게로 달려올 것은 여호와 네 하나님 곧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로 말미암음이니라 이는 그가 너를 영화롭게 하였느니라

 

태초부터 인류역사의 모든 과정 속에서 하나님은 오직 이 말씀만을 일관되게 해오셨습니다. 어느 시대에나 이 말씀을 멈추신 적이 없습니다. “내가 내 아들을 세상에 보내서 너희를 죄와 멸망의 비참함에서 건져내겠다. 여자의 후손이라는 이름으로 보낼 것이다.” 노아의 시대에는 셈의 후손 가운데서 그가 오실 것이다.” 아브라함의 시대에는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야곱의 열 두 아들들이 등장했을 때에는 유다 지파의 왕으로 그가 오실 것이다.” 다윗 시대에는 이새의 줄기 다윗의 뿌리이자 후손이라는 이름으로 그가 오실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리고 이사야의 시대에는 영원하신 하나님의 아들이 한 아기의 모습으로 우리에게 오신다예언해 주셨습니다. 이 약속과 답을 간절히 요청하는 갈급한 마음이 가난한 심령인 것입니다.

 

심령이 가난하다는 것은 곧 성령으로 거듭나서 영혼의 비참함을 알게 되고, 그 결과 하나님께서 예언하신 하나님의 아들의 복음을 요청하고 갈망하게 되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육신적으로 부유하든 가난하든 내 영혼이 하나님과 단절되어서 심히 비참한 지경에 빠져있다는 이 진실을 모르고 있다면 나는 배부른 심령이 영혼이 죽어 감각이 없는 상태인 것입니다.

 

그런데 이 심령의 가난함은 육신의 가난이나 부유함과는 별로 상관이 없는 이야기입니다. 육신적으로 가난해도 심령은 다른 것으로 배불러 있을 수 있고, 육신적으로 부자여도 하나님만을 갈망하는 심령이 가난한 자일 수 있다는 뜻입니다. 육신적으로 가난한데 그 마음에 돈에 대한 동경만 가득하다면 그 사람은 심령이 가난한 자가 아닙니다. 육신도 가난한데 영혼도 죽어 있는 거지요.

 

요즘 젊은 사람들 사이에 수저 계급론이라는 신조어가 돌고 있다고 합니다. 금 수저를 물고 태어났네 은 수저를 물고 태어났네 그런 말들 들어보셨나요? 이게 부모의 재력을 나타내는 말이라고 합니다. 금수저 은수저 동수저 흙수저까지 있다고 해요.

 

부모가 50억 이상의 자산가로 본인이 대학 졸업 후에도 직접 노동시장에 뛰어들 필요가 없는 사람을 금수저를 물고 태어났다 그런데요. 은수저는 부모가 경제적으로 아무 어려움이 없고, 자식이 결혼하면 아파트 정도는 해결해 줄 능력이 있고, 대학졸업때까지 돈 걱정은 크게 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구요. 동수저는 전형적인 대한민국 서민들의 가정인데요. 부모가 조그만 집한채와 약간의 현금을 가지고 있고, 대학 등록금까지는 대주는 정도면 동수저를 물고 태어난 거래요. 흙수저는 고아이거나 부모는 20세 이후 본인이 사는데 있어서 경제적으로 아무런 도움이 안 되는 경우를 흙수저라고 부른답니다. 벌써 부모 된 마음이 아프고 눈물겨운 분들이 있으실 줄 압니다. 인터넷에 한 젊은 네티즌이 이런 글을 써 놓았습니다.

 

점점 커가면서 느끼는 것은 부모님이 내 눈치를 본다는 것이다. 전화를 걸고도 공부하고 있을까봐 받기도 전에 끊어 버리신다. 부모님은 항상 내게 경제적으로 더 잘해주지 못해서 미안해 하신다. 본인들은 만원짜리 신발을 신으면서도 아들 바지 사라고 10만원을 쥐어주시고, 그러고도 미안해 하신다. 나는 흙수저라는 말이 싫다. 아무도 나에게 흙수저를 물고 태어났다고 하지 않는다. 하지만 나는 흙수저라는 말을 우리 부모님이 알게 될까봐 싫다. 자식에게 늘 더 잘 해주지 못해 미안해 하는 우리 부모님들이 흙수저라는 말을 알게 되시면 본인들이 자식에게 흙수저를 준건 아닌지 하고 생각하실까봐 싫다. 나는 부모님께 흙수저가 아닌 좋은 흙을 받았다. 내가 깊게 뿌리 내리고 건강하게 자랄 수 있는 좋은 흙을 받았다. 정작 당신들은 나에게 해준 것이 없다고 늘 말씀하시지만 부모님의 존재로 인해 나는 오늘도 성장한다. 큰 나무가 되어야겠다. 부모님이 기대 쉴 수 있는 큰 나무가 되어야겠다. 그리고 아주 좋은 흙을 주셔서 감사하다고 말씀드리고 싶다.”

 

이 내용이 감동스럽기는 하지만 신자는 이 정도 수준보다 더 나아가야 합니다. 저는 우리 성도님들이 금수저 은수저를 동경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동수저 흙수저라고 슬퍼하거나 쓸쓸해 하는 마음에서조차 자유로워지시기를 바랍니다. 서부중앙교회 성도님들은 팔복의 진리를 깊이 깨달으시고 진정한 천국의 부유함을 아시는 분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환경 탓 부모님 탓 하면서 땅의 부유함을 동경하고 있는 마음은, 육신은 가난하면서도 심령은 이미 땅의 욕망으로 배불러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나 반대로 고대광실에 살고 제황의 권세를 누려도 그 마음에 영원한 진리이신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면 허전해 하고 갈증을 견디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진센돌프 백작이라는 분은 부유한 귀족의 신분으로 태어났지만 육신의 부유함 때문에 영의 감각을 잃어버리지 않았습니다. 그는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 그림 앞에서 깊은 깨달음을 얻고 일평생을 주께 헌신된 삶을 살아갑니다.

 

육신이 부자여서 영혼이 잠들어 있는 사람들의 비극은 성경이 구약에서도 신약에서도 신랄하게 지적해 주고 있습니다.

 

<이사야5:11-12> 11>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 독주를 마시며 밤이 깊도록 포도주에 취하는 자들은 화 있을진저 12> 그들이 연회에는 수금과 비파와 소고와 피리와 포도주를 갖추었어도 여호와께서 행하시는 일에 관심을 두지 아니하며 그의 손으로 하신 일을 보지 아니하는도다

우리 주님께서 들려주신 어리석은 부자의 비유는 언제 읽어도 압권입니다.

 

<누가복음12:16> 또 비유로 그들에게 말하여 이르시되 한 부자가 그 밭에 소출이 풍성하매 17> 심중에 생각하여 이르되 내가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까 하고 18> 또 이르되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곳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19>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20>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21>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 두고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가 이와 같으니라

 

저나 여러분이나 이런 정도의 부유함으로 배를 두드리며 살지야 않지만 일상의 편안함속에서 만족해 버리는 일상적인 무감각은 분명히 경계하셔야 될 줄로 압니다. 우리는 배부름 대신 영혼의 갈증과 허기를 강렬하게 느끼시는 천국 시민이시기를 바랍니다. 천국시민은 심령이 가난한 사람들입니다. 눈에 보이는 환경이 부유하고 평안해 지는 것만으로는 도무지 만족을 누리지 못하고 하나님과의 교제와 소통을 누려야 비로소 살맛을 느끼는 것이 심령의 가난함입니다.

 

죄와 죽음이라는 인간의 공통된 운명 앞에서 가난해도 부유해도 내 영혼의 비참함을 깨닫고 구원자로 오신 예수님을 열정적으로 만나는 사람들이 심령이 가난한 사람들입니다. 그렇게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진정으로 사로잡히는 사람들만이 산상수훈에 나오는 다른 위대한 명령들에도 반응할 수 있게 됩니다.

 

무가치한 나를 사랑해 주신 하나님의 긍휼하신 사랑에 완전히 마음을 빼앗기게 되어야 오른 뺨 맞으면 왼 뺨도 돌려 대는 일을 흉내라도 내보려고 시도하게 됩니다. 그런 시도가 반복되면서 어느 새 나도 예수님처럼 내 자아의 십자가에 못 박고 범사에 아버지의 뜻에 순종하는 자아로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이 복된 증거가 내 자신 안에 뚜렷해지기를 소원하시기 바랍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이 세상의 돈 명예 권세 건강과 쾌락으로는 만족하지 못하고 오직 하나님 아버지와 주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님의 영원한 사랑, 그 안에서 기쁨과 만족을 누리는 복된 분들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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